응씨배는 대만의 사업가이자 바둑 애호가인 잉창치(應昌期 응창기)가 당시로는 파격적인 우승상금인 40만달러를 걸고 4년마다 개최하는 대회로 1988년에 창설되었다.
창설 당시에 한국에서는 응창기배 혹은 잉창치배라고 불렀으나 점차 응씨배로 굳어지는 흐름이며 혹자는 응씨라고 부르면 너무 하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에 응가배라고도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응씨배이다.
응씨배 역대 한국프로기사 우승자 |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바둑은 일본과 중국의 기세에 눌려 하수 취급을 받던 시기였는데 제1회 응씨배에서 조훈현의 우승으로 한국바둑의 위상을 알리게 되었고 이후 제4회 대회까지 한국의 4대천왕(조서유이)이 연속 우승을 함으로써 한국바둑은 세계최강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개요
대회창설 : 1988년 故응창기(應昌期)
주최 : 응창기 위기교육위원회
대회주기 : 4년(확실하게 4년 주기를 지키지는 않는다)
대회방식 : 본선 1라운드 이후 16강 토너먼트 준결승 3번기 결승 5번기
대국방식 : 덤 8점(7.5집)의 응씨룰, 제한시간 3시간에 시간초과 벌점제
대회상금 : 우승 40만달러, 준우승 10만달러
대략 위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제대로 정확하게 지켜지는 것은 1회대회 당시의 우승상금만 불변이라는 것이다. 당시 우승상금 40만달러면 엄청나게 큰 액수 였지만 지금은 매년 개최되는 세계대회 우승상금이 3억원 정도인데 4년마다 진행되는 대회 치고는 많다고 느껴지지 않는 규모이다.
8강까지는 단판 토너먼트로 진행되다 준결승은 3번기, 결승전은 5번기로 진행되어 왔는데 9회 결승전은 3년이 연기된 탓인지 3번기로 진행될 예정이다.
제1회 응씨배 1988~1989
1회대회에 한국은 북미나 유럽과 같은 바둑 변방국 취급을 받으며 출전권을 달랑 1장만 받아 조훈현이 출전하게 되었다.
자존심을 구긴 한국기원과 조훈현은 이를 갈고 본선에 임하게 되는데...
우선 16강전에서 조훈현은 대만의 왕밍완을 꺾고 기분 좋은 스타트를 하게 되었고 8강에서는 일본의 지하철류 고바야시 고이치를 완파하며 4강에 진출하게 된다.
4강전 상대는 이중허리 임해봉(린하이펑)이었고 조훈현은 아랑곳 하지않고 2대0으로 완파하며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결승전 상대는 중국의 "철의 수문장"으로 불리던 녜웨이핑(섭위평)으로 결정되었고 조훈현은 첫판을 승리로 장식하지만 내리 두판을 내어주며 벼랑끝에 몰리게 되었고 이후 벌어진 4국과 5국을 연속 잡아내며 재역전 우승을 하게 된다.
바둑올림픽으로 불리던 응씨배 첫대회에서 홀로 출전한 조훈현이 우승을 차지한 것은 중국과 일본에게는 쇼크 그자체였고 한국에게는 엄청난 바둑광풍의 시작이었다. 조훈현이 우승을 차지하고 귀국하자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제2회 응씨배 1992~1993
1회 대회 우승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자 주최측은 한국에 출전권을 몇장을 부여해야 하는 문제로 고민을 하던중 망명했던 장주주 루이 부부의 대회 출전을 허용하자 중국측이 출전거부를 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2회 대회는 중국이 참여하지 않는 반쪽 대회로 전락했지만 한국에겐 5장의 출전권을 부여해 반사이익을 보게 되었다.
한국측 대표로는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양재호가 출전하게 되었고 1회대회 출전을 하지 못했던 2인자 서봉수가 이번대회에 칼을 갈고 나오게 된다.
서봉수는 1회전에서 대만의 정밍환을 가볍게 꺾고 16강에 올라 일본의 후지사와 히데유키를 제압하고 8강에 진출하게 된다. 8강전에서는 우주류를 구사하며 인기와 실력 모두 정상권에 있던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를 잡는 파란을 연출하며 준결승에 진출해 조치훈과 3합을 벌이게 되었고 승리의 여신은 서봉수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2대1로 힘겹게 조치훈을 격파하고 결승에 오른 서봉수의 상대는 일본의 미학자 오다케 히데오 였다.
결승전 5번기의 결과는 패승승패승으로 마지막 5국까지 가는 난타전 양상이었는데 5국서도 중반까지 아주 불리한 바둑을 서봉수 특유의 난전을 이끌어 내며 역전승을 거두게 된 것이다. 역시 서봉수의 전매특허인 난전, 혼수상태 무아지경의 바둑에서는 그 누구보다 승부근성이 살아있었다.
이렇게 2회대회도 한국의 된장바둑 서봉수가 우승을 차지하며 마무리하게 되었고 1회대회 우승이 그저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한국바둑을 세계최강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제3회 응씨배 1996
중국이 출전하게 되었으며 2회대회와 마찬가지로 24명이 본선에 참가하는데 한국은 전기와 같은 5명의 출전권을 확보해 한국바둑의 위상을 인정하는 추세가 되었다. 한국대표로 2회와 같이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양재호가 출전했으며 이번에는 세계무대서 급성장한 유창혁이 사고를 치게된다.
유창혁은 24강전에서 대만의 왕리청에 승리를 거둔 후 16강서 전기 준우승자 오다케 히데오를 꺾었으며 8강서는 이창호에게 승리하며 파죽지세로 4강에 올라 린하이펑(임해봉)을 2대0으로 셧아웃시키고 결승에 오르게 된다.
유창혁이 상대할 결승전 상대는 조치훈을 2대1로 꺾고 올라온 요다 노리모토로 결정 되었고 기세가 오른 세계최고의 공격수 유창혁에게 요다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게 된다. 3대1 유창혁의 우승!
제4회 응씨배 2000~2001
응씨배를 3회연속 제패한 한국은 4회대회에는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양재호, 최명훈등 6명이 출격하게 된다. 그러나 8강에 오른 기사는 이창호가 유일했고 이미 국내기전을 장악한 이창호가 이번에는 일을 낼 차례가 된 것이다.
이창호는 16강서 왕리청을 8강서는 요다를 연파하며 4강에 진출해 중국의 위빈을 2대0으로 완봉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결승상대는 중국의 창하오로 결정 되었으나 누가 이창호의 리즈시절에 상대가 되겠는가? 이창호는 가볍게 창하오를 3대1로 꺾고 한국에 대회 4연패를 안기게된다.
이로써 한국바둑의 전성기 시절인 1990년대 4대천왕이 응씨배를 차례로 접수하게 되었고 아마도 이시기가 한국바둑의 최절정기가 아니었나 싶다.
제5회 응씨배 2004~2005
조서가 물러나고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유창혁,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 송태곤이 참가하게 되었다. 8강에 최철한, 이창호, 송태곤이 진출하였고 공교롭게도 최철한과 이창호가 맞붙어 최철한이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진출했고 송태곤도 왕밍완을 물리치고 4강에 진출하게 된다.
처음으로 4강에 한국기사가 2명이 진출하게 되었고 최철한은 중국의 펑취안을 2대1로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 송태곤은 중국의 창하오에 1대2로 패하며 결승진출이 좌절되었다.
결승에서 만나 최철한과 창하오의 대결은 창하오의 3대1 승리로 끝이 났으며 이렇게 한국의 응씨배 장기집권은 일단 막을 내리게 된다.
제6회 응씨배 2008~2009
한국은 유창혁이 빠지며 이창호를 비롯해 최철한, 송태곤, 이세돌, 박영훈, 이영구가 출전하게 된다. 전기 우승자인 창하오는 16강서 조치훈에 패하며 탈락이 확정되었고 한국은 승승장구하며 최철한, 이창호, 이세돌이 4강에 진출하게 된다.
최철한은 중국의 류싱에 2대0 완승을 거두며 2회연속 결승진출을 확정 지었고 이창호와 이세돌이 맞붙은 빅카드는 관록의 이창호가 2대0으로 승리하게 되었다.
결승 5번기는 처음으로 한국기사의 맞대결이 형성되었고 절정기를 맞이하는 최철한이 이창호를 3대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제7회 응씨배 2012~2013
7회대회에는 기존 이창호, 이세돌, 최철한에 원성진, 김지석, 박정환이 합류하게 된다. 김지석은 1회전에 탈락했고 5명이 16강전에 나서게 되었지만 박정환과 이창호만이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8강서 박정환과 이창호는 각각 조치훈과 장쉬를 꺾고 4강에서 맞붙게 되었고 승자는 2대0으로 완승을 거둔 박정환 이었다.
반대편 조에선 중국의 어린기사 판팅위가 승승장구하며 결승에 진출했고 박정환을 상대로도 3대1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판팅위의 응씨배 우승으로 각종 기록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고 중국기사중 세계대회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기사로 기록되었고 당시 3단이던 판팅위는 9단으로 한방에 입신 타이틀을 달게 되었으니 이기록도 최초였다.
제8회 응씨배 2016
이창호가 사라지고 전원 1980년대생으로 세대교체를 이룬 한국이다.
이세돌, 원성진, 박영훈, 강동윤, 김지석, 박정환이 출전하게 되었고 박영훈, 원성진, 강동윤이 1회전을 통과하면서 6명 전원이 16강에 진출하게 되었고 이세돌, 강동윤, 박정환, 김지석이 8강에 진출하게 된다.
이전까지 3회연속 진출해 이렇다할 성적을 남기지 못했던 국내 1인자 이세돌은 8강서 강동윤을 꺾고 첫 4강에 진출하게 되었고 박정환도 커제를 꺾고 4강에 진출하게 된다. 준결승에서 맞붙은 이세돌과 박정환의 3번승부는 박정환이 2대1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박정환은 2회연속 결승에 진출한다.
다른 준결승 경기는 중국의 스웨와 탕웨이싱의 대결이었는데 탕웨이싱이 2대1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해 박정환과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우승이 유력해 보였던 박정환은 탕웨이싱과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치른 끝에 2대3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2회연속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제9회 응씨배 2020~2023
기존 24명 출전에서 30명으로 확대됨에 따라 1회전이 28강전으로 진행되었고 이전 16강시드를 8명의 기사에게 부여했던 것을 전기우승자와 준우승자 2명에게만 부여해 1회전 통과자 14명과 더해 16강전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시드를 받은 전기 우승, 준우승자인 탕웨이싱과 박정환은 16강서 탈락하게 된다.
한국은 박정환을 비롯해 신진서, 신민준, 변상일, 이동훈, 김지석, 안성준이 출전해 이중 8강에 오른 기사는 신진서가 유일했다. 거의 전멸수준 이었지만 신진서는 8강서 구쯔하오, 4강서 자오천위를 연파하며 결승에 오르게 된다.
이후 코로나가 터지면서 결승전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3년만인 2023년 8월21일 결승1국이 열리는 것으로 확정 되었다.
신진서의 결승상대는 8강서 커제, 4강서 이치리키 료를 꺾고 올라온 셰커이다.
결승서 맞붙은 동갑내기 두기사의 대결은 객관적 전력에서 크게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 신진서가 2대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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